세계가 주목한 갓
우리 전통의 길을 넓히다
K-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며, 한국의 전통 모자 ‘갓’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갓일’의 명맥은 단 4명의 장인이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이번 호 〈아이콘 스토리〉에서는 국가무형유산 갓일(입자장) 보유자 박창영 장인과
그의 아들 박형박 이수자를 만나 갓의 현재와 그 너머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한국인에게 갓은 굉장히 친숙한 제품이지만 정작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갓의 주재료는 대나무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과정과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갓일은 크게 세 공정으로 분업화되어 있고, 이에 따라 장인도 세 분야로 구분되어 있다. 갓의 기둥 부분인
갓대우를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 가늘게 만든 대나무를 엮어 갓의 차양 부분(양태)을 만드는 ‘양태장’, 총모자와 양태를
완만한 곡선과 직선의 형태를 잡고, 그 위에 갓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가미하여 결합해 갓을 완성하는 ‘입자장’이다. 그중
국가무형유산 갓일(입자장) 보유자로 지정된 박창영 장인은 아들 박형박 이수자와 함께 5대째 갓일을 가업으로 삼고 있다.
“갓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공예품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갓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과 제작 단계를 거치죠. 그래서 갓일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분업 체계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갓을 한 가지 종류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색과 소재에 따라 훨씬 세분화된다. 색으로 구분되는 갓에는 대표적으로 ‘주립’과 ‘백립’이
있다. 주립은 붉은 갓으로, 당상관 3품 이상(현재의 군사관련 장, 차관 급)의 무관이나 왕을 호위하는 인물만 착용할 수 있었던 귀한 갓이다. 백립은
대나무의 자연색 위에 모시를 씌운 ‘소색’의 갓으로, 상을 당했을 때 착용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생각하는 검은색 갓은 '흑립'이다.
“흑립은 소재에 따라 ‘포립’과 ‘사립’으로 나뉩니다. 포립은 얇은 명주 천을 씌운 갓으로, 일반적인
양반들이 착용했습니다. 반면 사립은 완만한 곡선을 잡은 양태나 죽모자 위에 실을 한 올 한 올 얹어 만든 최고급 갓입니다. 조직이 훨씬
촘촘하고, 움직일 때마다 특유의 은은한 광택이 살아나죠. 이 때문에 사대부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착용했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미감을 담아낸 넷플릭스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갓은 세계적으로 ‘힙한 모자’의 반열에 올랐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갓을 가리켜 ‘코리안 카우보이 햇’이라며 감탄하고, 국립중앙박물관 뮷즈의 ‘흑립 갓끈 볼펜’은 이제 구하기도 어려운 인기 상품이 됐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동양인 최초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조각상이 세워진 김대건 신부 역시 갓을 쓴 모습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이 같은 흐름은 장인들에게도 직접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박창영∙박형박 부자는 2019년도 드라마 〈킹덤〉이 뜨면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했다.
뒤이어 뉴욕에서도 초청을 받아 특별전을 열었다. 그러다 코로나 이후 관심이 조금 사그라들 때 즈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로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올여름 링크서울과 함께 갓 전시회를 열었는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습니다. 이후 미켈란젤로
재단이 운영하는 베니스의 국제 공예 비엔날레에 장인으로 선정되어 〈호모 파베르 2024: 삶의 여정〉에 작품을 출품했죠. 전시품인데도 불구하고,
기자들 사이에서 ‘꼭 쓰고 싶다’ ‘한 번 써 보면 안 되냐’며 반응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그러다 기자 투표로 인기상까지
수상했죠.”
사실 갓에 대한 해외의 찬사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1880년대 후반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탐험가 샤를 바라는 “공기와 빛이 적당히 통하고 기능성에 따라 제작된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지앵들이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기록했고,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너무나도 섬세하게 짜기 때문에 어느 것이 대나무이고 어느 것이 비단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며, “머리 위에서 평생을 붙어 다니는 영원한 검은 후광”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현대에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갓이지만, 치솟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전통 갓의 가치는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갓 대부분은 전통 갓의 형태만 차용했을 뿐, 소재와 제작 방식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갓과 소품용 갓은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질감의
차이가 확 느껴집니다. 이 광택은 기계나 망 소재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수작업으로만 나오는 결과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갓은 가격의 벽 앞에서 다시 한번 대중과 멀어진다. 갓 하나를 완성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와 시간이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갓의 가격도 매우 고가에 형성되어 있다. 작품 수준으로 재현된 갓은 가격이 무려 4천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갓에 관심을 갖고 구매 문의를 주시는 분들도 가격을 들으면 대부분 깜짝 놀라세요. 1년에 두세 개가
팔릴 때도 있지만, 아예 한 개도 팔리지 않는 해도 있습니다. 지금은 국악인들이 이따금 찾는 정도죠.
‘이제는 현대화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작업할 때 쓰는 도구만 봐도 전기화로를 제외하면 모두 옛날부터 사용해 왔던
거예요. 대나무를 죽사로 가공하는 과정도, 이를 촘촘하게 엮는 작업도 현대화되기는 힘든 부분이고요.”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갓일이 5대째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형박 이수자는 “갓일을 선택했다기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로서 전통의 한 축을 맡고 계시고, 저는 이수자로서 작품과 연구 그리고 행정의 영역에서 갓일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형박 이수자는 2014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갓일 전승은 물론 다른 전통 분야 전승자들을 위한 전문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부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갓에는 미적, 실용적 기준을 넘어선 가치가 있습니다.
선조들이 쌓아온 사고방식과 미감,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죠.
불편하거나 낡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문화가 있습니다.
갓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박창영·박형박 부자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한다. 시대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이어지도록, 이들의 손끝은 오늘도 갓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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