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을식당의 든든한 버팀목인 주민 봉사팀. 이들은 단순한 식사 준비를 넘어 제철 식재료와 다채로운 요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미식 경험과 정서적 풍요를 선물하는 ‘마을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모두에게 열린 따뜻한 식탁의 환대
서울 도봉구 방학2동의 한 골목, 수요일 오후가 되면 구수한 밥 냄새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학원 가방을 멘 중학생, 혼자 온 초등학생, 친구 손을 잡고 들어선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익숙하게 현관문을 밀고 들어선다.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 대신 “밥 먹었니”, “더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같은 정겨운 말들이 공간을 채운다. 누군가는 식탁 한쪽에서 숙제를 하고, 누군가는 마당에서 한바탕 뛰어노는 풍경은 영락없는 ‘동네 큰집’의 모습이다. 이곳은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스스로 돌봄으로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청소년 마을식당 밥먹go’(이하 청소년 마을식당) 현장이다.
“요즘 굶는 아이가 있어요?” 청소년 식당이라고 말하면 대뜸 나오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방학2동 청소년 마을식당 실무자들은 “굶는 아이들에게 밥 한끼 먹이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요”라고 쉼표없이 답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청소년들은 특히 관계가 맺어져야 성장의 시작을 도울 수 있다. 청소년 마을식당은 학교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돌봄과 성장의 시간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활동이다. 특히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경제적 형편을 증명해야 하는 급식 카드를 내밀게 하는 것은 돕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밥먹go’ 사업은 이러한 ‘자격의 증명’을 과감히 없앴다. 2022년 6월 첫 식사를 준비한 이후 3년 넘게 이어온 이 여정은 아무런 조건 없는 ‘열린 환대’가 아이들의 정서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직접 증명해내고 있다.
이렇게 누구나 환대하는 공간을 만들지만 청소년 마을식당 실무자들은 잊지 않고 더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할 청소년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현실의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깊고 촘촘하지 못하다는 것을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느끼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방학동 청소년 마을식당 골목은
맛있는 음식 냄새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아무도 없는 집이나 위험한 골목 대신,
안전한 보호처가
되어주는 청소년 마을식당
밥상 공동체 넘어 자립 배우는 ‘마을 교실’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의 청소년 마을식당이 자리한 ‘꿈빚는마을
방아골’ 전경.
서울시 지원을 받는 공간으로, 방학동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청소년 마을식당 ‘밥먹go’ 사업에서는
생활 습관,
경제, 친구 관계 등 건강한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KB캐피탈의 후원과 사랑의열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청소년 마을식당은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청소년의 전인적 성장을 돕는 다각적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핵심은 ‘스스로 돌봄, 서로 배움, 함께 성장’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스스로 돌봄’이다. 생활·정신·경제·성 네가지 영역의 자립을 워크북 형식의 ‘자기돌봄과제 BOOK’으로 풀어내 아이들이 자기 몸과 마음, 시간과 관계를 스스로 살피는 훈련을 돕는다. 두 번째는 ‘서로 배움’이다. 솜사탕을 예쁘게 만드는 법부터 문해 교육과 청년 인문 동아리까지, 자신의 작은 재능을 또래에게 나눠주는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나도 누군가에게 줄 것이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을 얻는다. 세 번째는 ‘함께 성장’이다. 아이들을 돌봄의 대상에서 마을의 주체로 세우는 단계로, 동네 쓰레기를 줍는 줍깅 활동, 나눔 장터 ‘방구마켓’, 지역 축제 자원봉사를 통해 받은 돌봄을 다시 마을로 돌려주는 구조다. 밥 한 끼로 시작된 인연이 ‘나에서 너로, 우리로, 마을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것이다.
마을이 직접 쓰는 새로운 돌봄 교과서
청소년 마을식당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전문 조리사가 아닌 60여 명의 지역 주민이다. 주거 지원 활동가, 대안 학교 교사, 학부모 모임, 협동조합 구성원 등 면면도 다양한 이들이 다섯 팀으로 나누어 매주 번갈아 주방에 선다. 이들은 단순한 조리 봉사를 넘어 아이들의 이름과 식성, 먹는 양까지 기억하는 ‘마을 어른’이 되어준다. “지난주에 왜 안 오셨어요?” 하고 먼저 안부를 묻는 청소년들과 축구를 좋아하지만 유니폼이 없던 아이에게 조용히 유니폼을 마련해준 봉사자의 관계가 이 공간의 또 다른 온기다.
2018년부터 지역 아동·청소년과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는 공동체를 일궈온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은 청소년 마을식당을 도봉구 전역의 다양한 모델로 확장하는 10년 비전을 그리고 있다. 매주 한 번, 한 달에 한 번, 형태는 달라도 아이들을 환대하는 식탁이 전국 곳곳에 차려지는 미래를. 오늘 밥상 앞에 앉은 아이가 언젠가 주방에 서서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풍경, 그 선순환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말을 오늘의 방학동 골목에서 현실로 번역해내고 있다.
관계의 문을 닫았던 아이가 웹툰학과 대학생이 되어 첫 아르바이트비로
사 온 감사의 빵.
마을이라는 든든한 ‘비빌 언덕’이 일궈낸 성장의 증거다.
“학교도 가정도 닿지 못한 자리에 밥상을 차렸죠”
청소년 마을식당 마을돌봄1팀 박정화 팀장
Q청소년 마을식당 ‘밥먹go’를 기획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2021년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멈췄을 때, 그동안 만나던 아이들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누군가는 학원이나 과외로 학업을 이어갔지만, 돌봄의 경계에 있던 아이들은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집이라는 더 불안정한 공간에 고립돼 있었죠. 오후 늦게 나타나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따뜻한 밥을 매개로 관계를 이어갈 공간이 절실함을 느꼈습니다. 3년의 고민 끝에 지역 활동가분들이 손을 잡아주신 덕분에 2022년 6월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Q식사를 제공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초기 자본과 인력을 마련하는 일부터 민간 주도 운영에 따른 재정적 불안정까지 매 순간이 고비였습니다. 특히 운영 초기, 특정 취약 계층 아이들만 이용하는 곳이란 주변의 편견과 오해를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죠.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은 누구나 편하게 드나드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선생님 칠순 때까지 식당 해주세요”라는 아이들의 농담 섞인 진심과 친구를 데려와 식당을 소개하는 활기찬 모습들이 지친 저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Q이번 지원이 현장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사실 2025년 사랑의열매 공모사업에서 한 차례 낙방한 경험이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당시 담당자께서 선발되지 못한 저희 사업까지 꼼꼼히 살피시고는, 청소년 사업을 지원하는 KB캐피탈과 연결해주시는 열의를 보여주셨죠. 그 안목 덕분에 2026년까지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복지의 핵심은 아이들과 꾸준히 마주하는 ‘안정된 공간’과 ‘지속적인 관계’인데, 이를 지켜낼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최적의 지원책을 연결해주신 세심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Q‘밥먹go’ 마을식당을 거쳐간 아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변화의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관계가 서툴러 늘 혼자였던 한 아이가 떠오릅니다. 눈을 감거나 피 흘리는 그림만 그리던 아이였는데, 몇 년간 꾸준히 이름을 불러주고 안부를 묻자 서서히 그림 속 주인공이 눈을 뜨기 시작하더니 결국 웹툰학과에 진학해 첫 아르바이트비로 저희에게 빵을 사 왔더라고요. 또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귓속말로만 대화하면서 저희와 눈을 맞추기까지 꼬박 3년이 걸린 아이도 있었죠. 긴 시간 곁을 지켜주자 이제는 연애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밝게 성장했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믿고 기다려주는 어른과 마을이라는 안전한 울타리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