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의학연구의 황금기(Golden era)를 꿈꾸며

이 형 근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몇 해 전 본교 의전원 입시에 참여한 필자의 실제 경험이다. 지원자중 한 명의 업적이 의과대학 교수로 채용해도 될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지원자는 업적으로 3편의 논문만을 제출하였는데 3편 논문의 IF 합이 80점이 넘고, 이 논문들이 모두 원저 (ORIGINAL ARTICLE)이라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박사학위 기간인 4년 반 동안 수행한 연구업적임을 고려할 때 그 학생이 얼마나 연구에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으며, 학위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긴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연구를 수행해본 사람이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학생의 지원과 관련하여 당시 본인을 포함하여 모든 심사관이나 면접관들이 가졌던 생각은 이 학생이 임상연구보다는 기초연구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의학전 문대학원(이하 의전원)에 지원한 학생들은 임상의를 원하는 것이며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충분한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제공 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제도를 도입한 많은 학교에서 의전원 제도를 폐지하고 이제 이 제도를 통해 학생을 더 뽑고 있지 않다. 의전원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은 수년 전부터 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학교, 제약사, 로펌 등을 포함해 많은 곳으로 진출을 시작해 있으며 이제 각 분야에 서 훌룡한 인재들로 키워질 것임을 저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아직 제도가 시행된 기간이 짧고 충분한 인재들이 배출되어 각 적 소에 배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의 성패나 잘잘못을 이야기 하기는 이른감이 있어 필자는 이를 이야기 하고자 하 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 병원으로 이어지는 의학교육의 토양이 이런 인재들을 키워낼 수 있는 여건인가에 대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부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대한 비판 이전에 우리 의과대학과 병원은 학생선발, 교육, 전공의 수련에 있어 어떠한 변화와 노력을 기울였는지 스스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으며 일단 이미 들어온 인 재들을 잘 길러내는 것은 현재 우리 의과대학들의 몫일 것이다.

현재의 의학교육은 분명히 필자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르다. 본과 1,2학년때 하루 7, 8시간의 수업을 하며 많은 시험과 야간의 해부학실습까지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현재 학생들의 학업량으로 방대한 의학지식을 얼마나 흡수하고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 의학교육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발전하고 수정되어 왔다.1-3 '의학교육과' 라는 곳도 많은 의과대학 내 에 생겼으며 이를 통해 의학교육 전반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의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분명 큰 전진이며 학 생이나 의과대학 모두에서 긍정적인 흐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수련을 담당하는 병원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임상실습 중 인 학생들의 교육량 저하에 따른 의학교육 질의 감소와 이에 따른 수련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각각 다른 능력과 개성을 가진 인재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은 30여년전, 저자가 의학교육을 받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선발의 기준이 바뀌어 들어오는 학생들이 바뀌었다면 교육 프로그램도 같은 수준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현재 의과대학들의 교육방향은 시대가 바라는 인재를 길러내기에 부족함이 있지 않 나 싶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자율적인 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수업이나 공부의 양은 분명 저자의 시절보다 적어진 것 같으며, 다양성 및 시대의 흐름에 기대어, 오히려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학생들로부터의 인기에 영합하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이러한 교수가 능력있고 인정받는 시대로 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2020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었다. 과학분야 수상자들의 출신 국가를 보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다. 최근의 수상자들로 범위를 넓히면 인구가 불과 수백만에 불과한 스위스에서 물리학상(2019, Michael Mayor, Lausanne, Switzerland) 나온 것이나 최근 몇 년 동안 부럽게도 이웃 일본(2019, Akira Yoshino, Suita, Japan)이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 다. 임상의사로서 노벨상을 받기는 이제 많이 어려워진 것 같다. 필자가 노벨상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임상의사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든지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떠한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흥미롭게도 임상의사와 노벨상과 관련된 시론이 Science에 게재된 적이 있다.4 1964년부터 1972년 까지 미국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에 근무하였던 연구자 9명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한 곳 에 근무하였던 연구자들의 업적이 노벨상을 받은 것이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밝히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이 9명 모두 Medical doctor(MD)들이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NIH에 들어오기 전에 residency program을 수료한 전문의였으며 한 명(MD., PhD, 의과대학을 들어오기 전에 PhD degree를 획득함)을 제외하고는 실험실 연구경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NIH에서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NIH를 떠났으며 일부는 clinical department에 다른 일부는 의과대학 기초학교실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 9명이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분야는 매우 다양하여 receptor discovery, infectious disease, basic mechanism of cancer 등 이였고(표 1) 다양한 지도교수로부터 배움과 연구를 수행하였으나 서로를 잘 알았고 연구에 대해 깊이 토론하며, 연구이외의 다른 것에는 거의 신경을 두지 않고 지냈다고 회상하였다. 이들은 초창기 연구에 대해 매우 서툴러 기본적인 단백질 합성을 위한 세균배양부터 힘들어 했으나 bedside에서의 임상경험과 무관한 NIH에서의 경험이 매우 강렬하였으며 이곳을 떠나 연구를 지 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하였다.

시기적으로 위에 언급된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로 당시 미국은 많은 의사들에 대해 군복무를 요구하였다고 하며 위에 언급된 9명 모두는 군대를 대신하여 academic institute인 NIH에서의 근무를 지원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군대를 대신하여 NIH에 지원하였던 많은 좋은 MD 인재들로 NIH MD fellowship은 훌륭한 지원자들이 넘쳤으며 이 과정을 거 친 사람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위 9명 이외에도 많은 미국의과대학 교수 요원들과 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의 회원 들로 성장하였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의 끝과 함께 미국도 이제는 이러한 시대는 지나갔으며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다수의 의과대학은 기초연구 보다는 임상연구에, 원리를 밝히는 연구보다는 translational research에 더 관심이 많다. 만일 막 임용된 어떤 젊은 임상교수가 기초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그(녀)는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독려해주는 환경에 있기 보다는 많은 무관심한 교수들 사이에서 곧 본인의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확률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의 진정한 발전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생명현상의 새로운 발견과 이해에 근간을 하며 이는 개개인의 호기심에 따른 연구를 통해 생성되고 발전되어 가는 것이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임상데이터를 통한 쉬운 임상 연구나 연구비를 얻기 위한 공동 연구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위에 언급한 Golden era of Medical research 가 주는 교훈은 젊고 열정적인 연구자가 능력있는 mentor와 만나 연구를 수행하게 될 때 근본적인 의학의 발전을 이룰만한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학쪽의 대부분의 인재들이 의과대학에 몰려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비록 대다수의 의과대학 학생들이나 전공의들이 임상의학에만 관심이 있을지라도 이들이 이러한 분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기초연구와 성취에 관심을 가질 수 있 는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양질의 다양한 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현대 의학교육의 중요한 사명이고 목적일 것이다. 이들 중 극소수가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공한다면 기회를 제공하였던 의학교육은 성공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표 1. The Nobel nine (Science 2012; 338:1033). 4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국가시험을 통과하여 숙련된 훌륭한 임상의를 길러내는 것 은, 세계적인 임상수준을 갖고 있는 우리의료를 생각할 때,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훌륭한 기초의학자나 탁월한 연구력을 갖춘 임상의학자를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는 선진국가들과 미래에 경쟁할 수 있는 MD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과연 우리 가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당장 급하다고, 또 훌륭한 MD 연구자를 길러내었던 시스템이라고 무작정 선진국의 의 학교육과 수련제도를 그대로 우리의 시스템에 덧씌우는 것 역시 맞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의학교육과 관련해 저자는,

1. 의과대학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연구의 기회를 부여해 주었으면 한다.
현재 많은 의과대학들이 대개 단기프로그램으로서, 또는 형식적으로 연구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한 연구발표의 기회 를 학생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관심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았으며 실제 연구로 인한 성취감을 느끼 기에는 한계가 있어 이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또, 학생뿐 아니라 전공의 시절에도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줄 것을 주장한다. 저자도 몇 달의 짧은 research 경험은 아주 강력하였으며 대학에서 계속 공부하며 연구할 수 있는 버팀 목이 되었다. 대개 2-3개월의 term으로 옮기는 전공의 수련 3-4년 동안 단 한번이라도 연구나 논문을 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비록 극소수라도 좋은 MD 연구자를 길러 낼 수 있는 토양에 씨를 뿌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2.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나라에 봉사하는 젊은 인재들을 대학과 연구소가 흡수하여 훌륭한 연구인력으로 키워낼 수 있는 제도적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도 Physician Scientist 를 길러내기 위한 프로그램이 몇 몇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으나 실제 이를 지원하는 MD는 극히 제 한적이다. 실질적으로 physician scientist 프로그램들이 성공을 거두려면 좀 더 그럴듯한 유인책을 만들어 MD 과정을 마친 인 재들이 대학이나 기타 연구소 등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PhD를 마친 학생들이 ‘병역특례제도’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서의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위에 언급한 미국의 Golden Era of Medical Research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우리는 군대나 공중보건의로 근무해야 하는 인력들을 통해 언제든 만 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3. 제도적으로 훌륭한 인재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유연한 교육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된 의전원 지원자에 대해 저자 마음에 든 첫 번째 생각은 과연 이 학생이 의과대학에 들어와 연구력을 유지하고 키워 나갈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우리가 가졌나 하는 것 이었다. 저자가 10 여년전 미국에서 연수하던 기간 동안 남다른 재능을 가진 많은 의과대학 학생들이 교수들과의 연구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본인들의 재능을 사용하여 교수들과 같이 연구를 진 행하면서 각 임상분야에 대한 흥미와 이해도를 증가시키고 첨단 기초과학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저자가 듣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일부 학교는 수업과정을 임상트랙과 기초트랙을 구분하고 있으며 각 트랙에 따라 임상과목과 기초과목의 가중치가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두 트랙간의 유연성이 존재해, 한 트랙을 선택한 학생들이 다른 트랙으로의 이동을 대단히 쉽 게 만들어 놓아 본인의 적성과 역량에 따른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일본 역시 졸업 후 전문의 과정에 기초연구를 해 야 하는 시간을 두고 있으며 나중에 교수요원을 생각하는 전공의는 우리나라처럼 수련기간과 대학원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대학원 기간 동안 FULL TIME으로 연구하는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의과대학의 존재이유와 의학교육의 과정은 단순히 주어진 의료제도의 틀에서 진료를 열심히 하는 의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설명 되지 않는다. 만일 의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고 기술을 수련하는 과정 만으로서 의학교육을 생각한다면 현재 의 의학교육으로도 충분하며 이미 이런 교육과정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많은 사람들을 배출해 왔다.5 그러나, 현대의 의과대학과 의 학교육은 보편적인 의사를 만드는 것 이외에 인류와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호기심 충만한, 개발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여 새로운 분야와 시대를 만들 수 있는 의사로 성장시키는 것 역시 사회로부터 부여 받은 큰 책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로부터 최대한의 역량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학교육은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해져야 한다.

Reference
  1. 1 Kim KJ, Kim G. Development of e-learning in medical education: 10 years' experience of Korean medical schools. Korean J Med Educ 2019;31:205-214.
  2. 2 Kim S. Student centered medical education. Korean J Med Educ 2012;24:279-280.
  3. 3 Yeo S, Chang BH. Implementation of problem-based learning in medical education in Korea. Korean J Med Educ 2017;29:271-282.
  4. 4 Goldstein JL, Brown MS. History of science. A golden era of Nobel laureates. Science 2012;338:1033-1034.
  5. 5 전우택, 김아영. 한국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연세의학교육의 역할을 중심으로. 연세의사학 20권 1호 51-6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