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 희
카이안과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획일적인 규격을 가진 형태로 생산되는 사회에서 손으로 하는 공예의 가치가 재조명됩니다. 다양한 형태의 수공예가 있지만 그 중에서 제가 오랜 시간 사랑해온 것은 유리공예입니다. 2000년도 대학에 입학하자 인천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공방에 찾아간 이후로 국내 많은 수의 유리 공방의 문을 두드리며 작업을 해왔습니다. 유리로 할 수 있는 공예는 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은 토치를 이용하여 기물을 만드는 램프워킹과 글로리 홀을 이용하여 녹인 유리를 입으로 불어 만드는 블로잉이 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경우는 유리를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서 구리테이프를 주변에 두른 뒤 납땜으로 구리테이프를 서로 붙여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면 돼서 집에서도 환기가 잘 된다면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램프워킹은 가스와 산소를 혼합하여 고열을 내뿜는 토치를 이용해서 빨대 정도 크기의 유리관을 녹여서 만들게 되는데, 원하는 모양을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특히 일본 관광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외부에 가스통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개인작업실을 만들기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개인이 운영하는 공방이 꽤 있어서 원데이 클래스로도 아래와 같은 작업물들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http://nuboart.com에서 대부분 재료의 구입이 가능합니다.
유리공예의 끝판왕은 뭐니뭐니해도 블로잉입니다. 베니스에 가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무늬의 유리병들은 모두 사람의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유리공예의 결정체입니다. 유리를 글로리 홀이라고 하는 가마에서 녹이고, 파이프를 이용해 유리를 원하는 만큼 떠서 입으로 불고, 식는 동안 도구를 이용하여 원하는 모양을 만들게 됩니다. 램프 워킹으로 할 수 있는 작업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기물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온도도 훨씬 뜨겁고 무게도 무거워서 아기자기한 공예라기 보다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공예의 느낌입니다. 힘이 셀수록 작업이 더 수월하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 블로잉을 잘 하기 위해 근육운동을 따로 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블로잉을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국도자재단에서 하는 강습 프로그램이 있는데 일년 전 재단이 이전하여 재개관하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되어 현재는 수업이 개설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여주에 있는 이룸 스튜디오(www.eroomstudio.com)라는 이정원 작가님이 하시는 개인 작업실에서 강습을 받고 있습니다. 학생의 무리한 요구에 어이가 다소 없어도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왕복 세시간이 넘는 거리이지만 매주 주말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실로 향합니다.
그렇게 싫어하는 근육운동을 하면서까지 블로잉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블로잉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 때문입니다. 10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갓 꺼낸 유리는 마그마처럼 뚝뚝 떨어지는 불덩어리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꺼낸 이후에는 주변 온도에 따라 매순간 온도가 달라져서 채 몇 분 안에 차가운 고체의 형태로 굳어지게 됩니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서 눈으로 보고 유리의 온도를 가늠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적절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매 순간 의사로서, 혹은 부모로서 결정의 연속인 삶을 살면서, 불완전한 내가 무심코 했던 결정에 의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결정하는 순간에는 모르다가 나중에 되돌이킬 수 없을 때에 알게되는 아픈 경험들이 생기게 됩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흐르는 불덩어리 같은 유리를 만지며 매 순간 결정하고 몇 분 이내에 그 결정이 결과가 되어 되돌이킬 수 없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살면서 느꼈던 스스로의 불완전함에 대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욕심처럼 완성도 있게 작업이 끝내지지 않아 자괴감이 들지만 몇 년 내내 불완전한 작업물을 받아보고 나면, 아 이게 나의 형태구나, 나는 이게 다구나, 하며 미완성적인 결과물과 미숙한 자신에 대해 수긍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면 아주 조금씩 보이지 않게 발전하다가, 어느 순간 꽃을 피우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저의 염원과도 같았던 lace cane work입니다. 하얀색 유리를 투명 유리로 감싸서 얇고 길게 늘인 다음에 식히고 잘라서 같은 길이의 cane을 모아 열을 가해 붙인 뒤 꽈배기처럼 꼬아서 다시 늘이고 자르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며칠에 걸쳐 완성된 cane을 나름으로 배열하여 녹인 후 불게 되면 위와 같은 완성된 형태의 작업물을 얻게 됩니다. 각각의 무늬는 매 순간 유리의 온도와 두명의 작업자의 손에 의해 여러 번 무작위의 형태로 변형이 되고 그 과정이 누적되어 완성되는 것으로, 형태가 완전하지 않아도 작업자의 마음으로는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결과물이 됩니다. 유리공예의 매력은 이렇게 찰나의 변화와, 변화의 불가역성, 그리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거친 작업물이 모두 다른 형태의 불완전한 결과물이 되는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 간 블로잉을 하면서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아들은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수양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등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한 전에 없는 고통들도 얼른 찰나의 순간으로 사라져서 다시 건강한 얼굴로 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