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한의약
영조 어진을 통해 본
‘코와 건강’

글. 윤소정(한의사)

(왼쪽) 연잉군 초상, 박동보, 1714년, 비단에 채색. 87×183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물 제1491호.
(오른쪽) 영조 어진, 채용신, 조석진, 1900년, 비단에 채색. 61.8×110.5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물 제932호.

왼쪽은 숙종 40년(1714년), 영조가 왕이 되기 이전인 연잉군 시절에 제작된 초상이다. 생전에 직접 보고 그린 원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다. 한국전쟁 당시(1954년) 화재로 일부 소실됐지만, 다행히 용안 부분은 훼손되지 않았다. 약간 아래로 삐죽하게 솟은 매부리코가 두드러진다.
오른쪽은 이로부터 30년이 지난 영조의 나이 51세 때의 초상화다. 영조 20년(1744년)에 장경주, 김두량 등이 제작한 원본을 바탕으로 1900년에 조석진, 채용신 등 당대의 실력 있는 초상 화가들이 그린 이모본이다. 원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매와 붉은 입술도 인상적이지만, 산근(콧마루와 두 눈썹 사이)부터 이어지는 쭉 뻗은 코가 얼굴의 중심을 안정감 있게 잡아준다.
영조(1694년~1776년)는 조선의 제21대 왕으로 50년 넘게 왕의 자리에 있었으며, 최고로 장수했던 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왕들은 수명이 비교적 짧았다. 총 27명 중에서 절반 정도가 50세 이전에 사망했으며, 환갑을 넘긴 사람은 단 6명뿐이다. 전체 왕의 평균수명이 47세인데 반해 영조는 83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그가 75세 때 대신들이 말하길, 그의 피부가 청년 시절과 다름없다고 했다. 또 미각도 노쇠하지 않고 여전했다고 한다.

코로 드나드는 기운이 우리 몸을 움직인다

《동의보감 외형편 : 코》에는 “코는 신기(神氣)가 드나드는 문으로, 신려(神廬)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려’는 농막집(논밭 가운데 간단히 지은 집)으로, 신려는 ‘신기의 통로’이자 ‘신이 잠시 머무르는 곳’이란 의미다. 이때 신, 신기는 ‘정신 의식 활동’ 또는 ‘생명 활동의 기능’을 뜻한다.
또한 “코를 잘 통하게 해야 코로 드나드는 기운이 단전으로 들어간다”라고도 한다. 이는 도가의 경전을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 단전은 배꼽 밑 3치(9cm쯤)의 부위를 말한다. 한의학에서 단전은 일반적으로는 관원혈(關元穴)을 뜻하며, 정혈(精血)이 저장되어 있는 곳을 뜻한다. 남자는 ‘정’, 여자는 ‘혈’이 바로 이곳에 모인다.
단전은 배꼽 아래의 ‘신간동기(腎間動氣)’라고도 하는데, 이는 양쪽 신장의 사이에 있는 기운, 원기를 말한다. 신간동기는 기를 만드는 근원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오장육부와 경맥의 활동은 모두 신간동기의 작용이 있어야만 원만히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서 중요한 단전이기에, 예로부터 도교에서는 정기를 단전에 집중시키는 단전호흡법을 건강을 위한 양생, 수련법으로 중시해 왔다.
일찍이 한의학에서 코는 ‘폐와 통하는 구멍’으로, 폐의 기운이 곧 코와 통하기에 폐와 관련된 증상은 코를 통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가 코로 들어가서 심과 폐에 저장된다. 그러므로 심장과 폐에 병이 생기면 따라서 코도 순조롭지 못하다”, “폐기는 코로 통하므로 폐가 순조로워야 코가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다”라고 해 코와 심폐와의 관계가 밀접함을 강조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코의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가운뎃손가락으로 콧마루 양쪽을 20~30회 정도, 코의 안팎이 모두 뜨거워질 때까지 문지르는 것이다. 이는 코뿐 아니라 폐를 윤택하게 만들어 폐 건강에 도움이 된다.

코의 모양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우리는 “코가 큰 사람은 건강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실제로도 코가 큰 사람은 체격이 좋고, 코가 작은 사람은 체구가 작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코가 높더라도 살집이 없는 사람은 폐가 약하다.
코를 보고 진단할 때는 형태와 색깔 그리고 콧물의 변화를 함께 관찰해야 한다. 코의 색깔이 창백하면 기혈이 부족할 때가 많고, 푸르고 검은색을 띠면 몸 안에 찬 기운이 맺혀 있는 것이다. 코가 막히고 맑은 콧물이 흐르는 것은 풍한(바람과 추위)에 몸이 상한 것이고, 코가 막히고 탁한 콧물이 나는 것은 풍열로 인한 것이다. 풍열이란 풍사(風邪)와 열사(熱邪)가 겹친 것을 말하는데, 이때 풍사나 열사 같은 사기(邪氣)는 몸을 해치고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을 말한다. 특히 오래된 병일 때 코의 좌우 양 끝인 비익(코의 양 날개)이 벌렁거리면서 숨이 차고 땀이 나는 것은 폐의 기운이 끊어지려는 것으로 위험하다.
콧마루가 곧은 사람은 건강하고, 콧마루가 굽은 사람은 질병이 생기기 쉽다. 코가 한쪽으로 휘어져 있을 경우 코막힘, 비염 및 만성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비중격이 심하게 휘어진 ‘비중격 만곡증’이 있다. 비중격은 코의 중앙에 있으면서 콧구멍을 둘로 나누는 칸막이다. 비중격 만곡증은 코막힘, 후각 장애, 구강호흡, 수면 무호흡 및 비후성 비염(만성적인 염증에 의해서 하비갑개가 비후, 즉 두꺼워져 코막힘이 생기는 비염), 부비동염 등 코와 관련된 기능 장애를 유발한다. 코감기 등 염증성 질환인 급성 비염의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나 두통,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수면 장애 등 다양한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윤소정

여해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의학이자 과학의 가치를 지닌 한의학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쉽고 재미있는 한의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년을 위한 동의보감 이야기》, 《한의대로 가는 길》, 《얼굴과 몸을 살펴 건강을 안다》, 《유비백세》를 집필했다.